전시회소식 / 폐교의 기억 위에 다시 선 예술 Re: Vertical(다시, 서다)
- 5월 19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20일
흔들리는 세상에 ‘다시 서다’ — 부산 동래 수안아트하우스의 수직 회복 프로젝트 전시회소식

부산 동래구 충렬대로238번가길 48. 1997년 지어진 이 건물은 한때 아이들의 언어와 체력,
꿈이 쌓이던 공간이었다. 어학원과 체육 시설로 쓰이다가 어느 순간 빈자리로 남았다.
그리고 2026년 5월 5일 어린이날, 그 빈자리가 다시 문을 열었다. 이름은 ‘Re: Vertical(다시, 서다)’.
이 전시는 단순히 “버려진 공간을 예술로 채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 명의 부산의 젊은 작가가 한데 모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다시 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공간 전체에 새긴다. 선, 소리, 미디어가 교차하는 감각의 장이자,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인간이 본연의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조용히 실험하는 자리다.
옛 배움터가 던지는 현재의 질문
수안아트하우스는 DRB(동일고르벨트)의 후원으로 탄생한 공간이다.
인근 동래공장에서 열리는 ‘2026 루프 랩 부산’과 연계해 수안동 일대를
하나의 예술 권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지역 기업이 청년 작가들과 손잡고, 과거 교육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지역 문화 생태계의 수직적 연결을 시도한다.
전시는 목·금·토·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입장료가 없다는 점,
어린이날에 맞춰 문을 열었다는 점, 피콜로 연주가 곁들여진 오프닝(5월 6일)까지 —
모든 요소가 “미래 세대와 현재의 어른이 함께 서는” 장면을 의식한 듯하다.
세 개의 수직, 세 개의 제안
엄재한 「감정의 형태 그리고 의식의 흐름」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엄재한 작가의 대형 벽화 「감정의 형태 그리고 의식의 흐름」이다.
감정의 흔적을 선으로 시각화한 이 작업은 단순한 추상이 아니다.
인간 내면의 파도와 소용돌이를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결국 그 선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감정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서 있는’ 행위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원석 × 신지섭의 「파파게노」
버려진 지관(紙管)을 재료로 만든 설치물은 공간을 ‘소리의 숲’으로 바꾼다.
사운드 아티스트 신지섭과 설치미술가 한원석의 협업에 피콜로이스트 김원미의 연주가 더해진다.
관객은 소리를 따라 이동하며, 어린 시절의 상상력과 어른의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을 경험하게 된다.
버려진 재료가 소리를 품고, 그 소리가 다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이는 ‘수직’이 단순히 위로 솟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관계 맺으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임을 은유한다.
송지훈 「굴절의 찰나, 본질의 회귀」

‘수직선’을 매개로 본질로의 회귀를 탐구하는 이 작업은 작가 본인이 동래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굴절과 왜곡 속에서, 결국 관객은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돌아감’을 이야기하는 드문 태도다.
수평의 시대에 수직을 세운다는 것
2026년 현재, 우리는 끊임없이 수평으로 스크롤하고, 빠르게 소비하며, 중심을 잃기 쉬운 환경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다시 서다’라는 제목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의지와 실천에 가깝다. 엄재한의 선은 내면의 지도를 그려주고, 한원석×신지섭의 소리는 주변과의 공명을 일깨우며, 송지훈의 수직선은 본질로의 귀환을 제안한다.
이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세 작가의 작업이 서로를 보완하면서도, 공간의 과거(아이들의 배움)와 현재(어른들의 사유)를 자연스럽게 잇기 때문이다. DRB라는 지역 기업이 단순한 후원을 넘어 인근 공장 전시와 연계한 점도, 서울 중심의 미술 생태계 바깥에서 ‘지역이 스스로 서는’ 모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시가 남긴 질문
전시를 보고 나오면, 문득 이런 질문이 남는다.
“지금 내가 다시 세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은 전시장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재한의 선을 따라가다, 한원석과 신지섭이 만든 소리의 숲을 지나며,
송지훈의 수직선 앞에 서다 보면, 적어도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을 것이다.
이곳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다시 서는’ 연습을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Re: Vertical(다시, 서다)
기간: 2026년 5월 5일 ~ 6월 28일
장소: 수안아트하우스 (부산 동래구 충렬대로238번가길 48)
운영: 매주 목·금·토·일 10:00~18:00 (무료)
참여작가: 엄재한, 한원석×신지섭, 송지훈
후원: DRB(동일고무벨트)
부산 동래의 한적한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놀던 공간이 조용히 다시 일어서고 있다.
그 수직의 움직임이, 이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울림으로 남을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