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탐방 / 올라퍼 엘리아슨: 불확정의 건축가, 지각의 실험실에서 한국의 화산섬까지
- 6월 3일
- 2분 분량
올라퍼 엘리아슨의 지각 자체를 건축하는 실험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을 ‘빛과 물의 마법사’나 ‘기후변화 예술가’로 규정짓는다면, 이번 글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그는 단순히 자연 현상을 재현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지각 자체를 건축하는’ 실험실 운영자다. 그의 스튜디오(Studio Olafur Eliasson)는 베를린과 코펜하겐을 오가는 100명 가까운 다학제 팀—건축가, 연구자, 요리사, 프로그래머까지—이 모인 ‘지각 연구소’다. 여기서 탄생하는 작품들은 관객을 수동적 관찰자가 아닌 ‘공동 창조자’로 끌어들인다. “색은 빛이 망막에 부딪힐 때 비로소 존재한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은 불확정성(inconclusiveness)을 핵심으로 삼는다. 보는 순간마다, 느끼는 순간마다 달라지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습관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현실을 새롭게 재구성한다.

자연과 몸, 사회적 개입으로의 여정
1967년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아이슬란드와 덴마크에서 자란 엘리아슨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몸의 물리적 교감을 중시했다. 1995년 베를린으로 이주해 스튜디오를 세운 뒤, 2003년 테이트 모던 터빈 홀을 가득 채운 《The Weather Project》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대형 설치 너머에 있다. 그는 공공예술을 ‘시민의 근육(civic muscle)’으로 본다. 1998~2001년 《Green River》처럼 도시 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이거나, 2008년 뉴욕 이스트리버에 설치한 《New York City Waterfalls》처럼 일상 공간을 극적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는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공동체가 환경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 질문하는 사회적 개입이다. 2014년 시작된 《Ice Watch》 시리즈는 그린란드 빙산을 코펜하겐, 파리, 런던 광장으로 옮겨놓아 기후위기를 ‘직접 느끼게’ 했다. 관객은 녹아내리는 얼음 앞에서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호흡을 체감한다.

건축과 지속가능성의 새로운 지평
그의 작업은 점점 더 ‘건축적’이고 ‘지속가능’해진다. 2018년 완공된 《Fjordenhus》(덴마크 베일레)는 스튜디오가 처음으로 완전히 설계한 건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벽돌 구조물이 자연과 도시를 연결한다. 2022년 카타르 사막의 《Shadows Travelling on the Sea of the Day》는 거울 파빌리온 군집으로 사막의 빛과 그림자를 극대화해 ‘현실의 열림’을 제시한다. 최근 2024년 LA MOCA 《OPEN》 전시와 뉴욕 타냐 보나크다 갤러리 《Your Psychoacoustic Light Ensemble》에서는 소리파를 빛으로 번역해 시공간 지각을 뒤흔든다. 이처럼 엘리아슨은 예술을 ‘완결된 오브제’가 아닌, 끝없는 대화의 장으로 만든다.
한국 땅에 뿌리내린 ‘숨결의 지구’
엘리아슨은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이어왔다. 2016~2017년 리움 삼성미술관 《The Parliament of Possibilities》, 2021년 대전 신세계 아트스페이스 193 《The Living Observatory》 영구 설치, 2022년 PKM 갤러리 개인전 등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왔다. 특히 2024년 11월 신안군 도초도에 설치된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는 그의 한국 활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안 아트 아일랜드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공공조형물로, 도초도의 화산 지형과 용암석을 그대로 끌어들인 8m 직경 구형 구조물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미술 설치가 아니다. 신안의 갯벌(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는 장기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며, 엘리아슨의 철학—자연과 인간의 공존, 지속가능성—을 한국의 로컬 맥락에 정확히 착지시킨다.
엘리아슨의 작품은 오늘날 특히 의미가 깊다. AI와 디지털이 현실을 과잉 정의하는 시대에 그는 ‘불확정성’을 무기로 삼아 우리를 다시 몸으로, 감각으로, 공동체로 돌아오게 한다. 《숨결의 지구》처럼 특정 장소의 지질과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보편적 질문을 던지는 그의 접근은, 한국의 지방 활성화와 기후 담론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다음 번 한국 방문 때, 도초도의 구체 안에서 ‘지구 안’에 서보길 권한다. 그곳에서 당신의 시선이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 엘리아슨이 말하는 ‘현실의 열림’을 직접 체험하게 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