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원석 작가 탐방 "산업의 잔재에서 공공조형물로 이어진 회복의 미학"
- 5월 20일
- 3분 분량
‘회복과 순환’의 조형 언어

폐헤드램프, 폐스피커, 폐지관, 산업 폐자재. 일반적으로는 기능을 잃고 버려지는 물건들이다.
그러나 한원석 작가에게 이것들은 끝난 사물이 아니라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하는 재료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한원석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산업의 흔적과 도시의 기억, 버려진 자원을 예술 언어로 재구성하며 독자적인 설치미학을 구축해왔다. 특히 단순한 전시 작품을 넘어 도시와 장소의 기억을 담아내는 공공조형물, 상징조형물 작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환경·순환·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버려진 것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다
한원석 작가 작품세계의 핵심 철학
한원석 작가의 작업은 일관된 질문에서 출발한다.
“기능을 잃은 사물은 정말 끝난 것인가?”
2003년 담배꽁초 작업을 시작으로 그는 소비와 폐기, 환경과 회복의 문제를 예술적으로 탐구해왔다.
이후 폐헤드램프, 폐스피커, 폐지관, 산업 잔재 등으로 재료를 확장하며
‘버려짐 이후의 가치’를 조형언어로 발전시켰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반복적으로 ‘Re:’ 개념이 등장한다.Rebirth(환생), Re:moon(환월), Re:sonance 등으로
이어지는 작업들은 단순한 재활용이 아닌 “사물의 두 번째 생애”에 관한 이야기다.
폐기물은 작품 안에서 다시 빛이 되고, 소리가 되고, 기억이 된다.
대표 공공조형물과 상징조형물로 본 한원석작가의 작업 세계
1. 《환생(還生)》
폐헤드램프로 다시 태어난 첨성대
한원석작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는 폐헤드램프 약 1,400여 개를 활용해 제작한 첨성대 조형물 《환생》이다.
자동차 조명의 기능을 다한 헤드램프들은 작품 안에서 한국 고대 천문 유산인 첨성대로 다시 태어난다. 산업기술과 역사 상징물이 하나로 결합된 사례다.
이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런던시청 초청 전시를 통해 국제적 관심을 받았으며, 폐산업자재를 활용한 상징조형물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환생》은 단순한 업사이클링 작업이 아니다.
길을 비추던 빛 → 폐기 → 문화유산 상징 → 새로운 빛
이라는 시간의 순환 구조 자체를 작품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한원석 작가 철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2. 《형연(泂然)》
폐스피커 3,650개가 만든 성덕대왕신종
2008년 부산비엔날레에서 공개된 《형연》은 폐스피커 3,650개를 쌓아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인 성덕대왕신종을 재해석한 대형 설치작품이다.
빛을 다루던 헤드램프가 환생이 되었다면,《형연》에서는 소리를 내던 스피커가 역사와 공명의 상징으로 변환된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한원석은 폐헤드라이트로 빛을, 폐스피커로 소리를 조형 요소로 끌어들이며 현대 환경조형의 어휘를 확장한다.”
이는 단순한 재료 전환이 아닌 감각의 재구성, 즉 시각·청각·공간이 결합된 공감각적 조형 작업이라는 평가다.
3. 《환영(環影)》
연결과 공존의 메시지 한원석 작가의 《환영(環影)》은 2025 경주 APEC 개최를 기념하여 제작된 상징조형물로, 세계가 연결되는 국제 행사의 의미를 조형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작품명 ‘환영(環影)’은 고리 환(環) 과 그림자 영(影) 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다른 존재와 문화가 하나의 원 안에서 연결되고 공존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環’은 순환과 연결, 공동체를 의미하고, ‘影’은 시간의 흔적과 인간의 기억, 문명의 자취를 상징한다.
한원석 작가는 오랫동안 회복·순환·환경을 주제로 작업해 왔지만,
《환영》에서는 이를 보다 확장해 국가와 도시, 문화와 사람의 연결성으로 해석한다.
4.《환월(還月, Re:moon)》
한원석 작가의 ESG 설치예술 작품 《환월(還月, Re:moon)》은 조선 영·정조 시기 제작된 백자대호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해외로 반출되었다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환수된 달항아리의 역사적 의미에서 출발해 잃어버린 시간과 회복, 순환의 가치를 담아낸다.
에스엘(SL)의 후원으로 2021년부터 제작된 이 작품은 높이 약 4m 규모로, 약 600여 개의 폐자동차 헤드램프와 폐고무 소재를 활용해 완성되었으며, 한국 전통 달항아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특히 작품에 사용된 헤드램프는 약 15~20년 전 실제 차량에 적용되었던 부품으로 오랜 시간 도로 위 안전을 밝혀온 산업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역할을 다한 산업 자원이 폐기되지 않고 새로운 예술적 가치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ESG와 자원순환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환월(還月)’은 ‘돌아올 환(還)’과 ‘달 월(月)’의 의미를 결합한 이름으로, 길을 밝히던 빛이 또 다른 빛으로 이어지는 순환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버려진 빛은 다시 도시를 비춘다
“버려진 것을 가장 아름답게 되살리는 작가”
대중과 평단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한원석 작가는 폐기물 자체를 보여주는 작가가 아니라, 폐기 이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라는 점이다.
부산시립미술관장 서진석은 그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고유 기능을 상실한 물건들에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삶을 부여한다.”
또한 다원예술 전시 《지각의 경계: 검은 구멍 속 사유》에서는 산업공간과 폐지관, 소리, MR기술을 결합하며 예술의 영역을 확장했다. 평단은 이를 두고 산업 유산과 감각, 장소 특정성을 연결한 작업으로 평가했다.
공공조형물은 결국 도시의 기억이다
한원석 작가의 공공조형물과 상징조형물 작업은 형태보다 메시지에 무게가 있다.
버려진 산업자재 → 도시의 기억 → 예술 → 시민 경험
그 순환 구조 안에서 작품은 단순 조형물이 아니라 장소의 서사가 된다.
《환생》, 《형연》, 《환영》, 그리고 《환월》까지.한원석 작가는 산업의 잔재를 예술로 치환하는 작업을 넘어,
도시와 사람의 기억을 회복하는 공공조형 언어를 구축해가고 있다. 버려진 빛과 소리, 시간을 품은 재료들은 그의 손을 거쳐 다시 도시의 풍경이 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무는 새로운 상징으로 되살아난다.
앞으로도 한원석 작가는 작업을 통해 산업과 환경, 역사와 미래 사이에 새로운 연결점을 만들어갈 것이다.
길 위를 스쳐 지나간 빛의 흔적이 달이 되고, 잊혀진 도시의 기억이 조형물이 되어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듯, 그의 다음 작품 역시 시간의 잔재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세우며 또 하나의 도시 풍경과 시대의 기억을 빚어낼 것이다.












